성지 순례 후기(2)
  이성준   2008/04/0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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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이 선생님, 좀 바뀐 게 있습니다.”
버스가 출발하자 학과장 한정한 교수님께서 맨 앞자리에 있는 저 쪽으로 오시더니 슬쩍 자리에 앉으셨다. 누가 들어서는 안 될 말인 듯 낮고 다소곳한 목소리였습니다. 또 무슨 변고가 있나? 그런 학과장님의 모습에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. 짧은 순간, 몇 가지 시나리오가 떠오르고 수백 미터의 필름이 초고속으로 머릿속에 펼쳐졌습니다.
“아 예, 무슨?”
불안감으로 목소리마저 약간 떨리고 있었습니다. 그런 저의 불안감을 감지하셨는지, “큰 건 아니고요.”라며 안심을 시키고는 주머니 속에서 ‘성지 순례 일정표’를 꺼내셨습니다.
“몇 가지 바뀐 게 있습니다. 축문을 준비해야 하고, 학교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온다니 인터뷰도 하셔야 하겠습니다. 그리고,…… 학생회 주최 ‘연합MT’인 만큼 학부․대학원․교육대학원 대표들의 인사말도 해야겠습니다.”
“아… 예에……”
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. 그 정도라면 큰일도 아니었습니다. 글씨를 잘 쓰지는 못하지만, 말을 조리 있게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정도라면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. 그리고 그 정도는 얼마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.
학교에서 출발한 버스가 교통체증으로 예상보다 조금 늦어질 거란 소식과 비 때문에 우비를 준비해야겠다는 최효민 교육대학원 대표의 걱정 실은 목소리가 휴대전화를 통해 날아들었으나 그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. 빗나가기만 하는 기상대를 믿을 수 없다는, 비가 더 내리면 강행군을 할 수 없으리란 생각만 머리를 휘감고 있었습니다.
88도로를 버리고 강화로 들어서는데 학과 조교선생님이 운전기사에게 왔습니다. 그리곤 제법 오랫동안 말을 주고받는 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.
“왜요? 무슨 일 있어요?”
“아, 한 학생이 속이 좋지 않다고 해서요.”
“그래요? 어디요?”
조교선생님이 가리키는 곳에 창백한 낯빛을 한 교육대학원생이 앉아 있었습니다. 자신은 괜찮다고 했지만 낯빛으로 보아 토기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. 버스 내에 마련된 비닐봉지를 건네고 차를 세울 만한 곳에 좀 세워 달라고 했습니다.
버스가 서고, 그 학생과 다른 학생 몇이 내려 찬바람을 좀 쐬고……
그런 와중에도 저는 땅이 질어 산을 오르지 못할까봐 길가에서 가장 질어 보이는 곳으로 가서 흙을 밟아 봤습니다. 비는 제법 내린 것 같았지만 땅은 그다지 질지는 않았습니다. 등산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겠군. 얼마간 안심이 되자 담배가 생각나 한 대를 맛있게 빨았습니다. 그리고 화장실로 갔던 학생들이 돌아오고 그 여학생도 돌아오자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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